[용장산성](전남 진도) 고려 삼별초 옛 도읍지



용장산성](전남 진도)
고려 삼별초 옛 도읍지

전남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에 있는 용장산성은 삼별초군의 항몽유적지오 호국성지다. 남도에선 가장 먼저 수도가 됐던 자리, 고려 원종때 몽고족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조약을 맺자 이에 반대한 삼별초군이 왕의 6촌인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끝까지 항거했던 곳이다.

지금은 비록 궁터의 흔적만 있지만 쓰라린 민족의 비애가 있는 곳이다. 삼별초는 당시 궁터를 중심으로 둘레 약 12km에 성을 쌓았다고 한다. 궁터 뒤편 산으로 오르면 기와 몇조각이 성의 자리임을 알려주는데 가벼운 등산 삼아 가족들과 함께 올라 볼만하다.

용장산성은 주로 석성이지만 토성이 섞인 곳도 있다. 삼별초는 용장성에 터를 잡은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짓고 왕을 황제로 칭했다. 오랑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왜에 국서를 보내 자신들이 유일한 정통 고려 정부임을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이 진도로 온 것은 해전에 약한 몽고군과 맞서 싸우는 데 적합했으며 섬이 크고 땅이 기름져서 오래 비티더라도 자급자족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차례의 진도 공격에 실패한 여몽연합군은 삼별초가 용장산성에 든 지 아홉 달이 지난 원종 12년(1271) 5월15일, 고려 장수 김방경과 몽고 장수 홍다구를 지휘관으로 하여 병선 400척과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대규모 총공세에 들어갔다.

10여 일 동안 벌어진 격렬한 싸움에서 삼별초의 임금 온은 쫓기다가 죽임을 당했고 배중손도 섬 남쪽 남도석성 쪽으로 퇴각했다가 전사했으며 동쪽의 금갑진으로 퇴각했던 김통정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제주도로 건너갔다.

지금 용장성 안에는 석축으로 이루어진 건물자리들이 모두 12개 남아 있고 그 주변에 모두 420m에 이르는 토성이 둘려 있다. 궁궐터 아래쪽의 용장산성 안내 간판이 선 곳에는 샘이 하나 있다. 용장산성은 사적 제126호이다.

그밖에 삼별초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진도읍에서 의신면 동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운림산방 못미처에 온왕릉이 있다. 여몽연합군에게 쫓기던 삼별초 진도정부의 왕 온은 이곳에서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무덤 근처의 솔숲으로 덮인 고개는 왕무덤재라고 불려 온다. 왕 무덤 아래에는 말무덤이라 불리는 무덤이 또 하나 있는데, 왕이 탔던 말의 무덤이라고도 하고 왕을 따르던 신하와 군졸들의 무덤이라고도 한다.

용장산성에서 차로 10여분만 달리면 벽파진이 나온다. 진도대교가 생기기 전 유일한 육지와의 통로였고 흥청거리던 항구였던 이곳은 지금은 썰렁한 선창가. 하지만 울돌목과 다도해의 장관을 볼 수 있고 염전도 구경할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특히 이곳엔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기린 충무공 벽파진 전적비가 서 있는데 그 비의 웅장함과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깎은 주추가 장관이다.

◆드라이브 메모:진도대교를 지나 18번 국도를 따라 진도읍으로 3.4km 정도 가다 보면 낮은 언덕을 오르면서 왼쪽으로 벽파나루로 이어지는 801번 지방도로가 나 있다. 좌회전해 1.7km 가면 길 오른쪽의 용장리 입구. 이 길을 따라 2km 가면 용장산성에 닿는다. 넓은 공터가 있어 대형버스도 여러 대 주차할 수 있다.

◆대중교통:항공편이나 호남선 열차, 고속버스를 이용해 광주나 목포까지 간 후, 직행버스로 진도까지 간다. 진도에서 용장리를 경유, 벽파나루까지 가는 버스가 2∼3시간 간격으로 하루 5회 다닌다.

◆숙박:진도읍내 프린스모텔(061-542-2252), 대원장여관(543-0505)이, 진도대교쪽에 귀빈장여관(542-4343)과 진도하우스(542-7788)등이 있다.

◆숙박:용장산성 아래에 있는 용장산성관광농원(061-543-9955)을 이용하면 좋다. 집이 깨끗하고 흑염소와 청둥오리 등이 맛있는 곳이다. 사슴목장과 표고버섯재배지도 있어 어린이들에겐 구경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