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착한 차' 골프 GTI


 
스포츠 드라이빙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했다.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고급 스포츠카와 대형 세단의 통로였던 아우토반 1차로를 당당히 달린 차라고 했다. 폭스바겐 GTI 출시를 알리는 보도자료에는 이 차가 만들어졌던 1970년대를 되돌아보는 강한 향수가 깔려 있었다.

전설을 줄이면 이렇다. 작은 차가 큰 차들과 대등하게 달리는 놀라운 성능을 보였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5,000대만 만들기로 했던 차가 출시하자마자 주문이 쏟아져 지금까지 5세대에 걸쳐 1,500만대 가까이 팔리는 차가 됐다.

꼭 과거의 독일 얘기만은 아니다. 바로 지금 한국에서도 GTI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꽤 많다. 이 차가 출시하는 날 폭스바겐의 마케팅 담당자는 ‘매진’이라며 즐거운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GTI를 알아보는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이 차를 기다렸던 이들이 입도선매에 나선 덕이다.

봄비가 내리는 날 골프 GTI를 만났다.

▲디자인
레드&블랙. 빨간 컬러는 밝았다. 거기에 라디에이터 그릴과 범퍼 아래로 벌집 모양의 블랙 컬러가 배치돼 강한 인상을 던진다. 빨강과 검정으로 옷을 입은 해치백 스타일의 차는 도전적이고, 당돌하고, 강한 이미지를 지녔다. 첫 눈에도 만만치 않은 차임을 알 수 있다. 아니다. 어쩌면 스포츠 드라이빙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말에 미리 주눅든 기자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위풍당당한 자세는 작은 차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분위기다.

뒷모양은 간결하다. 3도어 해치백, C필러가 강하게 버티고 있고 루프에 이어진 스포일러, 리어램프가 자리잡았다. 폭스바겐의 'W' 마크가 큼직하게 자리잡았고 범퍼 아래로 2개의 머플러가 얌전하게 나와 있다.

길이 4.2m를 겨우 넘는 자그마한 이 차가 강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이어다. 225/45R 17 사이즈의 타이어를 달았다. 작은 차에 큰 타이어. 이 차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요소다. 보통 국산 중형차 타이어가 205/60R 16 전후인 것과 비교하면 고성능 타이어다.

인테리어는 깔끔 그리고 세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손에 딱 잡히는 운전대는 정확하고 매끄러운 원이 아니다. 원이지만 울퉁불퉁 굴곡이 있다. 레이싱카의 스티어링 휠을 잡는 맛이 난다. 2도어인 만큼 뒷좌석은 좁기도 하거니와 드나들기가 조금 번잡스럽다. 또 문이 커서 열리는 각도는 좁다. 옆차가 바짝 붙어서 세우면 문을 열고 내리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동승자가 이런 말을 한다. “차가 문제가 아니라 볼록 나온 당신의 배가 문제”라고.

▲성능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시원하게 내달릴 수 있는 길을 골랐다. 처음에 운전대를 잡을 때는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골프의 전설적인 모델이라는 기대, 해치백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해치백은 구조적으로 고속주행 안정성이 세단에 비해 떨어진다. 보닛을 타고 지붕으로 올라간 공기가 다시 트렁크 라인을 타고 내려오며 차를 지긋이 눌러주는 세단과 달리 해치백은 트렁크 라인이 생략되는 만큼 지붕까지 타고 올라간 공기의 흐름이 갑자기 뒤로 가면서 흐트러진다. 와류가 발생하면서 소리도 커질 뿐 아니라 차의 움직임도 고속으로 갈수록 눈에 띄게 불안해지는 게 해치백의 한계다.

그러나 골프 GTI는 해치백의 한계를 훌륭하게 뛰어넘었다. 2.0ℓ 터보 엔진의 최고출력 200마력의 힘은 1,336kg에 불과한 차체를 가뿐하게 시속 200km까지 올려 놓았다. 가속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0→100km/h가 6.9초 수준이다.

가속시간이 빠른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정작 놀란 건 고속주행 안정성이다. 날개만 펴면 날아오를 것처럼 빠른 속도에서도 차의 거동은 놀랄 만큼 안정적이다. '해치백이 맞나' 의심해야 할 정도로 보통 세단 이상으로 차가 안정됐다. 공기역학을 고려한 차체설계가 빛을 발하는 것이려니 막연히 짐작하면서도, 이 처럼 높은 속도에서 운전자가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거동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섀시를 15mm 낮춘 효과가 커 보인다.

사실 조용하지는 않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엔진소리는 비례해서 커지고 바람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이내믹한 소리는 듣기 즐겁다. 힘있게 치고 나가는 엔진소리, 춤추는 계기판의 바늘, 흐르는 창 밖 풍경, 손에 착착 감기는 운전대와 변속레버. 눈과 귀, 손이 즐겁다. '펀 투 드라이브'의 진수를 맛본다.

"악"소리 나게 급한 코너링을 거듭 시도했다. 심한 언더 스티어링에 타이어가 비명을 지를 것임을 짐작하며 일부러 과하게 운전대를 조작했다. 차는 약한 언더스티어링을 초기에 잠깐 보이다 만다. 운전대를 돌리는 만큼 차도 돌았다. 타이어의 비명이라도 들려야 할 텐데 조용했다. 참을성이 많은 타이어다. 묵묵히 차체를 지지하며 달릴 뿐이다.

파워 스티어링은 유압식이 아닌 전동식으로, 연비에 유리한 방식이다. 이 파워스티어링을 순간적으로 조작하면 묵직한 반발력이 전해진다. 그 묵직함은 순간적인 것이어서 곧 평상시의 스티어링 반응으로 되돌아온다. 아주 잠깐 운전대의 반발을 알 수 있는 것. 특이하다면 특이한 느낌이다.

▲경제성
3,940만원. 폭스바겐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착한 가격"이다. 거품을 싹 걷어내고 착한 마음으로 가격을 정했다는 말로 들린다. 둘러보면 값이 착한 차들이 꽤 있다. 포드 파이브헌드레드가 3,980만원, 사브 9-3 라이너 3,990만원, 푸조 407 2.0이 3,900만원, 혼다 어코드 3.0이 3,940만원, 볼보 S40 2.4가 3,580만원, 같은 폭스바겐의 파사트 2.0 FSI가 3,840만원 등이다. 비슷한 가격대의 차들 중 어떤 선택을 할 지는 각자의 자유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이 차를 갖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려본다면, '조금만 더 착하면 얼마나 좋을까'다.

▲GTI의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
골프 GTI의 시작은 비틀이었다. 비틀의 스포티 버전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제대로된 스포츠카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 EA337이란 코드명으로 시작된 GTI 개발 프로젝트는 그러나 사내에서도 비밀이었다. 몇 명의 개발자만이 아무도 모르게 비공식적으로 골프의 스포츠버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개발 도중에서야 이를 알게 된 당시 폭스바겐의 개발팀장조차도 “미친 짓”이라며 묵살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개발을 계속했다. 포르쉐 911에 185/70 사이즈의 타이어를 장착하던 당시에 이들은 205/60R 13 타이어를 달 만큼 고성능차 만들기에 집착했다.

73년부터 조용히 만든 모델은 75년에서야 비로소 경영진에 공개됐고, 그 때 공식적으로 "골프의 스포츠버전을 만들라"는 명이 떨어졌다. 이후 개발에 탄력을 받아 110마력 1.6ℓ 엔진의 GTI가 탄생했다. 75년 열린 46회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데뷔했을 때 방문객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어서 회사는 5,000대 특별생산을 결정했다. 76년 드디어 이 차가 출시됐고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GTI는 첫 해 판매실적이 약 5만대에 이를 만큼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지금까지 5세대 GTI가 전설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시승 / 오종훈 기자 ojh@autotimes.co.kr
사진 / 권윤경 기자 kwon@autotimes.co.kr